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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도그 - 탁월한 연출과 연기의 마력

by qkekquf 2022. 10. 24.

영화 파워 오브 도그에 대한 감상평들을 접할 때마다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왜냐하면 감상평들의 대부분에서 대단한 만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도 오랜만에 미학적으로 충만한 영화를 본 것 같다.

파워-오브-도그-포스터-남자가-말을-타고-있는-모습
파워-오브-도그

탁월한 연출과 연기의 마력

영화 자체는 굉장히 흥미진진하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의 분위기도 아니라서 뭔가 지루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야릇한 긴장감을 느끼며 봤던 마력이 있는 영화인 것 같다.

 

일단 필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모든 사람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듯이 굉장한 몰입감을 주는 연기를 보여 준다. 겉으로는 거칠고 폭력적으로 보이지만 그게 다가 아닌 이상 야릇한 인물을 누구다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로즈 역의 커스틴 던스트의 불안해하는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그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 모습에 점점 빠져 들었다.

 

영화 파워 오브 도그의 감독은 피아노로 유명한 제인 캠피온이다. 어린 시절 봤던 그 영화에 대한 희미한 기억과 파워 오브 도그는 조금 닮아 있었다.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자가 새로운 남편을 만나게 되는 모티브 말이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전혀 다르고 낯선 방향으로 영화는 흘러간다.

 

파워 오브 도그는 뉴질랜드에서 촬영되었지만 이야기 속 배경은 1925년 미국 몬태나의 큰 농장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몬태나주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영화 중간중간 인디언들에 대한 언급과 함께 실제 등장하기도 한다.

 

각기 다른 성격의 등장인물들

영화 속에는 총 4명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농장주인 필, 조지 형제와 로즈, 피터 모자이다. 그리고 그들이 한 집에 함께 살게 되면서 긴장이 더해진다. 형인 필은 마초적이고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남성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존재감은 항상 주변인들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하는 것 같았다. 동생을 돼지라고 부르며 중간중간 조롱하는 듯한 말도 자주 내뱉는 모습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힘을 끝없이 과시하며 상대를 짓누르는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동생 조지는 정장 차림의 외모처럼 신사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처럼 느껴졌다. 거칠고 공격적인 형의 언행에도 늘 침착한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영화를 계속 보다 보면 필은 동생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지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리고 큰 집에서 두 형제가 한 침대에 누워서 자는 모습이 잠깐 나오는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홀로 아들을 키우는 로즈가 등장한다. 필과 조지는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파티를 하게 된다. 그날 로즈의 아들 피터는 엄마의 식당일을 돕고 있었다. 그는 종이로 꽃을 만들어 식탁을 장식했다. 필은 그 종이꽃을 피터가 만든 것을 알고 그를 대놓고 조롱한다. 피터의 여성스러움과 나약해 보이는 행동들을 계속 주시하며 놀림거리로 삼는 것에 거침이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필의 조롱에 피터는 겉으로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지만 로즈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울고 만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된 조지가 로즈를 위로하며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게다가 조지는 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즈와 결혼을 해버린다. 이에 큰 분노를 느낀 필은 로즈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조롱한다.

 

특히 로즈가 조지가 사 준 그랜드 피아노로 연습을 할 때 2층에서 내려다보며 놀리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로즈가 서투른 솜씨로 연습하는 곡을 필이 기타로 현란하게 연주를 해버린다. 이 장면은 어린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에게 짓궂게 구는 듯한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필은 로즈의 모든 행동을 조롱하고 그녀는 그의 괴롭힘을 못 견뎌 알코올 중독자가 돼버린다. 로즈는 집안 안팎으로 술을 숨겨놓고 마시는데 그 모습을 발견한 필은 이상한 휘파람 소리를 몰래 내며 그녀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모습도 보여 준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필이 왜 이렇게 집요하게 로즈를 괴롭힌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로즈의 결혼과 함께 의대에 입학해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던 피터가 방학이 되자 목장에 돌아온다. 그때부터 필과 피터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금껏 그래 왔듯이 필은 피터의 여성성을 조롱하며 놀림감으로 삼는다. 하지만 피터가 필의 비밀을 목격한 후 둘의 관계는 미묘하게 변해간다.

 

결정적으로 피터가 목장 근처 산의 형상에서 개의 모습을 바로 찾아내는 것을 본 필은 그에게서 브롱코 헨리를 느끼는 것 같았다. 아마도 필은 브롱코 헨리를 존경할 뿐만 아니라 이성적으로 사랑했던 것 같은데 필에게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반면 피터는 필의 약점을 알게 된 후 그것을 냉정하고 침착하게 이용해서 결국 그의 섬뜩한 계획을 성공시킨다.

 

기묘한 아이러니에서 오는 긴장감

영화 파워 오브 도그를 서부극이라고 해야 할지 로맨스라고 해야 할지 스릴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보는 내내 느꼈던 묘한 긴장감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명확한 대사나 설명으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곳곳에 나왔던 상징이나 느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필에게서 피터로 존재감이 옮겨져 있는 것을 느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괴이하고 이상해 보이는 필에 대한 궁금증과 긴장을 느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는 내면의 강인함을 잘 숨기고 사는 피터의 과거의 행적과 미래의 계획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중간중간 나왔던 피터의 행동들, 필에게 자살한 아빠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 토끼를 해부하던 모습 등이 떠올랐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강인함과 냉정함을 철저히 숨기고 뜻을 이루는 무서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필은 반대로 내면의 여성성이나 열정을 숨기려고 겉으로 더욱더 거친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다. 피터가 마지막 장면에서 읽었던 성경 구절에서 비로소 파워 오브 도그(개의 세력)가 언급된다. 아마도 엄마를 필의 괴롭힘에서부터 구해내기 위해 했던 행동과 연관이 있는 구절인 것 같다. 그리고 과거 아빠의 죽음도 필과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또한 더 나아가 조지도 어쩌면 같은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파워 오브 도그는 필과 피터의 대조되는 모습을 촘촘한 상징으로 표현해내서 오랜만에 영화로 느낄 수 있는 미학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줬다. 부유한 부모에게 물려받은 목장을 운영하면서 굳이 카우보이 전통에 집착하며 잘 씻지도 않는 필의 아이러니처럼 기묘한 영화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피터는 베일에 쌓여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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