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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를 죽여줘 리뷰

by qkekquf 2022. 10. 21.

왜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냐는 물음에 소설가였던 아빠 민석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를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들의 일 외에는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게 되어서 그렇다고 말이다. 그 말에서 어찌할 수 없는 그의 삶이 느껴졌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까만 모니터 앞에 아무것도 못 쓴 채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모습도 떠올랐다.

 

영화-나를-죽여줘-포스터-아빠와-아들의-웃고있는-옆모습
영화 나를 죽여줘

무엇보다 영화 나를 죽여줘에서 공감이 갔던 부분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 이런저런 시련을 겪기도 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것은 희망을 가지고 진취적으로 열심히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다.

 

물론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이 당연히 모두 불행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려면 도움은 필수 조건인 것 같다. 그 상황에서는 힘내라는 말도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평하게 누구나 성실하게 일해서 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게 도저히 안될 수 있는 상황도 있다.

 

장애인 가족이 동반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자주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달렸던 댓글도 생각났다. 나라에서 지원도 해주는데 왜 더 노력하지 않고 죽을까 하는 내용이었다. 장애인들을 비장애인들이 누려야 하는 대부분에 것에서 제외시키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원을 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 지원이란 것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대사 중에 장애인은 밥도 안 먹고사는 줄 아는 것 같다고 하는 기철의 말도 공감이 갔다.

 

영화 나를 죽여줘를 본 관객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느끼는 부분이 다를 것 같다. 우선 영화에서 강조하는 장애인의 성문제나 존엄사 등에서 안타까움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 관객들이 많을 것 같다. 아니면 자신의 일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참한 모습에서 오히려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나를 죽여줘라고 말하는 화자는 지체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는 아빠이다. 장애아이를 둔 보통의 부모는 아이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아빠는 본인마저 후천적인 장애를 입어 극심한 고통을 겪고 결국 아들보다 먼저 죽기를 바란다.

 

아들을 돌보는 일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아빠 민석에게 심각한 병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병은 이미 많이 진전이 되어서 곧이어 그는 아들을 돌보기는커녕 자신의 몸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돼버리고 만다. 그 고통은 굉장히 심각해서 아들을 위해서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 싶었던 그의 소원도 잊게 만들었다. 이제 그는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남은 아들을 위해 망설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영화 나를 죽여줘에서 프레임화 되어 있는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영화가 나와도 결국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삶은 어떤 선이 그어져 있는 것 같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직접 되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는 삶을 보여주었지만 현실에서 정말 그들에게 다른 삶을 줄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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