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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 다시 시작한다면 잘 살 수 있을까

by qkekquf 2022. 6. 29.

2000년 1월 1일 개봉한 영화 박하사탕을 봤다. 보고 나니 개봉한 날짜의 의도를 알 것 같다. 벌써 20년이 지났는데 지금 봐도 대단한 영화라 느꼈다. 사실 어렸을 때 보다 나이가 들고 보니 주인공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 마지막에는 왜 그렇게까지 절규하는지 절실히 와닿았다.

 

박하사탕-포스터-주인공이-기찻길에서-절규하는-장면
영화 박하사탕

박하사탕
개봉 : 2000년 1월 1일
감독 : 이창동
주연 : 설경구(김영호 역), 문소리(윤순임 역), 김여진(양홍자 역)

 

잊고 있던 첫사랑이 데려다준 과거

영화 박하사탕은 현재의 주인공이 기찻길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과거로 거슬러 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처음에는 사흘 전으로 돌아가서 영호의 현재 상황을 보여준다. 재산도 가족도 잃은 영호는 권총을 구해서 주차장에서 차에 탄 누군가를 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그다음 찾아간 이혼한 아내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리고 밤에 외진 곳 비닐하우스에 도착한 영호는 그를 기다리는 낯선 남자를 만난다. 잔뜩 독기가 올라온 영호에게 슬픈 표정의 그 남자는 자신이 순임의 남편이라고 한다. 순임은 영호의 첫사랑으로 그녀가 그를 보고 싶어 해서 그녀의 남편이 찾아온 것이다. 영호는 순임이 있는 병실에 가지만 그녀는 이미 혼수상태이다. 그래도 그는 추억이 있는 박하사탕을 꺼내며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울다가 자리를 떠난다.

 

급히 떠나는 영호를 뒤따라온 순임의 남편은 그에게 그녀가 전해준 카메라를 건네지만 그것은 곧바로 4만 원에 팔린다. 순임과의 추억이 있는 카메라를 단숨에 팔아버리고 끼니를 급하게 해결하던 영호는 오열하는데 그다음 이야기는 더 과거로 돌아가서 1994년 여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망가진 순수함

1994년의 영호는 성공한 사업가로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아내에 대한 애정은 없지만 바람피우는 것은 용서하지 못하면서 자신은 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다. 영호는 식당에서 우연히 어떤 남자를 만나는데 그는 영호가 경찰일 때 고문했던 운동권 학생이었다.

 

1987년 봄 경찰인 영호는 식당에서 만난 남자가 학생이었을 때 스스럼없이 폭행하고 고문했었다. 그리고 수배자를 찾아서 군산에 가는데 그곳에서는 첫사랑 순임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다시 시간은 거꾸로 흘러 1984년이 되고 영호는 신입 경찰이다.

 

아직 순수한 영호를 식당에서 일하는 홍자는 짝사랑하고 있었다. 원래 고문하는 모습을 잘 쳐다보지도 못하던 영호는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영호는 선배들이 고문하던 수감자를 넘겨받아 더 잔인하게 고문하고 만다. 그리고 그 직후 첫사랑 순임이 찾아온다.

 

홍자가 일하는 식당에서 순임과 영호는 만난다. 순임은 영호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지만 그는 애써 담담한 척한다. 순임이 영호의 손을 보면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하자 일부러 그 손으로 옆에 있던 홍자를 성추행한다. 아마도 이때 영호가 자신을 진짜 망치기로 결심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굳이 눈물까지 흘린 순임이 선물로 준 카메라도 다시 돌려준다.

 

그리운 그 시절

영화는 1980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가서 군대에 있는 영호를 면회 온 순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순임은 계엄령이 내려져서 면회를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렇게 그녀는 되돌아가고 영호는 비상이 걸려 정신없이 군용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그 차에서 영호는 되돌아가는 순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직 겁 많고 순수했던 영호는 전쟁과 다름없는 임무 수행을 힘들어하고 오발탄까지 맞게 되어 동료들과 떨어져서 잠시 혼자 있게 된다. 그리고 그때 여학생이 집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자 했던 것이 실수로 그녀를 총으로 쏴서 죽게 한다. 그는 죽은 여학생을 안고 두리번거리며 한참 동안 오열한다.

 

1979년 가을, 친구들과 함께 영화의 첫 장면의 장소로 소풍을 온 영호와 순임이 나온다. 영호는 꽃을 보면서 자신은 사진 찍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것을 기억하고 순임은 나중에 그에게 카메라를 선물했던 것이다. 순임은 영호에게 박하사탕을 건네며 공장에서 박하사탕 포장하는 일을 한다고 한다. 친구들과 함께 나 어떡해를 부르다가 혼자 빠져나온 영호는 꽃 주변에 누워서 떨리는 눈으로 눈물을 흘린다.

 

다시 돌아간다면 잘 살 수 있을까

영화 박하사탕은 나이가 조금 들어서 봐야 와닿는 것 같다. 예전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잘 살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니 영화가 저절로 다 이해되고 와닿는다. 넋이 나간 영호의 눈빛이나 절규가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다.

 

영화 박하사탕은 시대의 불행이 한 개인에게 미친 영향과 그 불행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고 더욱더 나빠지는 그의 삶을 거꾸로 거슬러 보여준다. 만약 시간 순서상으로 보여줬다면 덜했을 텐데 현재의 절망 가득한 영호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점차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니 그 심정이 더욱더 절실하게 와닿는 것 같다.

 

이야기의 마지막인 첫 장면 하나로 영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준 설경구의 연기는 지금 봐도 너무 놀랍다. 그리고 이야기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구나 싶었는데 영호와 순임이 마지막으로 나눈 대사와 영호가 친구들로부터 빠져나와서 기차소리를 배경으로 혼자 눈물 흘리며 현재로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연출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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