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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 너는 모른다

by qkekquf 2022. 4. 22.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봤다. 워낙 유명하고 오래된 영화라 분명 본 적이 있는 것 같고 대충의 줄거리도 알지만 그동안은 집중해서 본 적이 없었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큰 고통을 겪고 난 여주인공의 변화가 어떻게 표현되었나에 집중하면서 봤는데 보고 나니 멍해졌다. 내가 느끼기에는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것도 종교에 대한 것도 아닌 고통 그 자체를 표현한 것 같다.

 

밀양-포스터-쇼파에-멍한-표정으로-누워있는-여주인공
영화 밀양

 

듣던 대로 이미 알고 있던 대로 두 주인공의 연기는 신기할 정도로 대단했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알 수 없음에 대한 영화이기도 한 이 영화를 어떻게 전도연은 그렇게 연기할 수 있나 싶었다. 주인공의 고통을 이해한 것을 넘어서 아이를 잃어서 어찌할 줄 모르는 고통 그 자체를 제대로 보여준 듯하다.

 

밀양에 오다

신애는 남편을 떠나보낸 후 아들 준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 살러 온다. 밀양에 와서 차가 고장이 나서 카센터 사장인 종찬을 처음 만나게 되고 그때부터 그는 신애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게 된다. 신애는 피아노 교습소를 차리고 나름대로 이웃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맞은편 약국 약사는 그녀의 불행에 대해 서슴없이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신애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애써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이웃들이 자신의 험담을 하는 것을 듣고도 못 들은척하며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 날은 아이가 보이지 않자 마당에 주저앉아 우는 신애 앞에 준은 신나서 웃으며 나타난다. 이때 신애의 우는 표정은 정말 슬퍼 보여서 장난스러운 상황이지만 나중에 전개될 상황이 미리 안타까웠다.

 

아들을 잃다

신애는 사람들에게 땅을 사려고 한다는 얘기를 하며 다닌다. 그리고 종찬과 함께 실제로 땅도 보러 다닌다. 준의 발표회가 끝난 뒤풀이 자리에서는 돈을 은행에 넣어봤자 이자가 얼마 안 하니 땅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한다. 밤에 이웃들과 모임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온 신애는 준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고 전화를 받는다. 준이를 데리고 있다는 유괴범의 전화인 듯한데 신애는 무릎을 꿇고 준이를 한 번만 바꿔달라고 하지만 통화는 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찌할 줄 몰라 종찬의 카센터로 가지만 노래방 기계 앞에서 열창을 하는 그를 보고 되돌아간다. 되돌아가는 길에 차가 달리는 도로에 쪼그려 앉아서 한참을 울고 다음날 은행에 가서 현금을 찾는다. 신애가 미리 준비한 쇼핑백 안에는 가짜 돈뭉치가 있었는데 그걸 쏟아내고 자신이 준비한 얼마 안 되는 돈을 집어넣고 범인과 약속한 장소에 넣어놓는다. 생각보다 적은 돈을 추궁하는 전화를 받은 신애는 땅 살 돈이 있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범인은 신애의 땅 투자에 대해 아는 사람일 것으로 좁혀지고 피아노 학원 앞에서 서성이며 우는 준의 웅변학원 원장 딸과 마주친다.

 

종교로 평화를 얻었다고 믿고 싶다

아이를 화장하고 나서 신애는 시어머니에게 험한 소리를 듣고 그때 종찬은 그녀의 편을 들어준다. 피아노 교습을 여전히 하는 신애는 약사의 조언대로 교회 예배에 참석한다. 종찬은 걱정되는 마음에 그녀가 아들의 사망신고를 할 때부터 쫓아와서 그녀가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기도회'에 가는 것까지 따라간다. 갑자기 신애는 대성통곡을 하며 오열하고 뒤편에 앉아서 종찬은 당황한다. 신애는 이 일로 믿음을 얻었다며 교회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교회 활동도 열심히 한다. 종찬도 덩달아 그녀를 따라서 교회에 다니고 신애는 사람들과 있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지낸다. 하지만 혼자 싱크대에 서서 겨우 밥을 먹으면서도 눈물이 나고 그 순간 어찌할 줄 몰라 주기도문을 외우기도 한다. 학원생인 준이만 한 남자아이가 화장실에 들어간 것을 아들이라고 착각하고 이름을 부르기도 하는 그녀는 전혀 평화롭지 않다.

 

하나님의 용서로도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신애는 범인을 직접 만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용서를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범인의 너무 평온한 얼굴을 보고 놀라고 그가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그다음부터 하나님을 미워하고 교회 사람들을 멀리 한다. 하늘을 바라보며 보고 있냐는 말을 자주 하고 레코드샵에서 CD를 훔치기도 한다. 야외 예배를 하고 있는 곳에 가서 목사가 기도를 하는 동안 훔친 CD를 트는데 그 노래가 하필 '거짓말이야'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음악소리에 들리지도 않는 기도를 더 열심히 하는 목사와 아랑곳하지 않고 열중하는 신도들이었다. 그들의 공감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 저 멀리에만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신애의 이상행동은 계속되어서 결국 자해를 하게 되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종찬과 함께 퇴원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녀의 고통은 계속되는데 퇴원 후 들른 미용실에는 범인의 딸이 일하고 있고 그녀는 참지 못하고 나온다. 물론 종찬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녀 곁을 지키지만 그렇다고 그 고통이 끝날 것 같지 않다.

 

밀양/ Secret Sunshine, 2007
감독 : 이창동
주연 : 전도연(이신애), 송강호(김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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