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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백 마운틴 - 계속 시작할 수 밖에 없다

by qkekquf 2022. 4. 17.

영화 브로큰백 마운틴을 개봉한 지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보게 되었다. 2005년 개봉 당시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하였는데 이제라도 보게 되어 다행이다. 일단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뭉게구름 아래 거대한 산맥을 말을 탄 두 사람이 수많은 양들을 몰고 가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비록 작은 화면이지만 무엇인가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을 받았고 그 공간은 둘의 애절한 사랑의 배경으로 너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브로크백-마운틴-영화-포스터-두주인공의-모습이-겹쳐있음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이안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그의 또 다른 영화 색계만 놓고 보더라도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신기했다. 예전 서부 영화에서나 보았던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말을 타며 양 떼들을 모는 그 장면 하나로도 이 영화의 정체성은 충분한 것 같다. 물론 드라마적인 서사도 특별한 사랑임에도 너무 납득이 가도록 잘 짜여있고 배우들의 자연스럽고 내면적인 연기도 훌륭했다. 20년 동안 각자의 일상을 살면서 서로를 계속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싶은데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둘의 사랑을 비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둘의 사랑으로 피해를 입는 두 여인이 나오고 그 또한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거대한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두 사람의 모습만 아른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일상을 살다보면 여러가지 것을 잊게 되는데 끝없는 자연과 닮아 있는 사랑을 두 사람은 현실을 억지로 살아내면서 해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에게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한동안은 가장 애절한 사랑이야기로 자리 잡고 있을 것 같다.

 

브로크백 마운틴, 2005
감독 : 이안
주연 : 히스 레저(에니스 델마), 제이크 질렌할(잭 트위스트)
출연 : 미셀 윌리엄스(알마), 앤 해서웨이(로린 뉴섬)

영원히 회귀할 잭과 에니스의 사랑

주인공인 에니스와 잭은 아귀레라는 사람에게 고용되어 브로크백이라는 산에서 양치기로 같이 일하게 되었다. 둘의 성격은 처음부터 달라보였는데 에니스는 수줍음이 많고 말이 없었다. 반면 잭은 적극적이면서 상대를 잘 살피는 스타일이었다. 두 사람은 아귀레의 지시에 따라서 산림청의 눈을 피해 양 방목지에서의 야영을 시작한다. 자연보호를 위해 산림청에서는 양 방목지 근처에서의 야영을 금지했으나 양을 보호하기 위해 두 사람은 고용된 것이었다.

 

에니스는 일주일에 한번 식료품을 조달받기 위해 노새를 끌고 산 아래에 내려갔다 오는 일을 하는데 하루는 곰을 만나서 노새들이 놀라서 달아나버린다. 힘들게 노새를 되찾아 밤에 돌아오기는 했으나 식료품들은 다 사라져 버렸다. 그날 잭은 에니스의 상처를 닦아주면서 둘은 조금 가까워진다. 그리고 에니스는 자신의 부모는 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고 형과 누나 손에 자랐다고 이야기한다. 그때 잭은 에니스에게 힘들었겠다는 말을 하는데 성인 남성이 저렇게 남의 말에 공감을 할 수도 있구나 하면서 다정하다는 생각을 했다. 둘은 사춘기 시절 소울메이트를 만난 것처럼 계산 없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는 듯하였다.

 

일주일치의 식량을 다 잃어버린 그들은 사냥을 하기도 한다. 조금 가까워진 두 사람은 술을 함께 마시고 에니스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날 밤에는 양들을 지키러 가지 못하게 된다. 잭은 술에 취해 추운 곳에서 자는 에니스에게 자신의 텐트에 들어와서 같이 자자고 하고 둘을 사랑을 나눈다. 잭이 먼저 시작하고 에니스는 처음에는 거부할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격정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다음 날 두 사람 다 선을 긋는 듯한 말을 하지만 둘의 사랑은 계속 이어진다.

 

둘이 두 번째 사랑을 나눌 때 잭이 미안하다고 하고 에니스는 괜찮다고 하는데 이 장면이 조금 애잔했다. 깊은 산속에 둘 뿐이지만 그들은 세상에서 금지된 사랑에 처음부터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둘의 사랑은 망원경으로 감시하던 아귀레의 눈에 들어간다. 그리고 양치기 일은 아귀레의 비난의 소리를 들으며 거의 실패로 끝나게 되고 둘은 산에서 내려온다. 산에서 내려오기 직전 돈 걱정을 하는 에니스와 돈을 빌려주겠다는 잭은 싸움을 하게 되고 셔츠에 피를 묻히게 되는데 이때 에니스는 셔츠를 산에 놓고 오게 된다.

 

아쉬움을 드러내는 잭과 달리 에니스는 덤덤하게 이별을 하는 듯했는데 잭과 멀어지자 에니스는 구석에 가서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만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지금도 난 알기가 힘든데 시간이 지나 다시 보게 되면 알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극 중 에니스의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히스 레저의 연기에서 두려움과 서러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울 수 있는 사람은 일단은 순수해야 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그때그때 나에게 닥친 부당함에 대해서만 주로 눈물을 흘려봤던지라 오랫동안 마음에 있던 뭔가를 쏟아내는 눈물이 신기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잭과 에니스는 일상으로 돌아와서 각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둘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한적도 없기에 그때까지 서로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다. 어느 날 잭은 에니스에게 찾아가겠다는 엽서를 보내고 소심한 에니스가 당장 오라는 답장을 한다. 그리고 잭이 에니스의 집에 찾아오고 둘은 만나자마자 열정적인 키스를 한다. 아마도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자신들의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둘은 오랜만에 재회함으로써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잭과 에니스의 특별한 사랑이 주이긴 하지만 그들의 배우자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나온다. 특히 에니스의 아내인 알마는 잭과 에니스가 만나자마자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야 만다. 하지만 아는 것을 티 내지 않고 혼자서 그 충격을 감당하는데 그 모습은 두 주인공의 안타까운 사랑만큼이나 공감이 가는 모습이다. 사실 두 주인공의 아내들은 외도의 피해자이기에 더 안타까운 면이 있기도 하다.

 

두 주인공은 재회를 통해서 연인으로서의 관계가 더 확고해졌으나 일상은 지키면서 만나는 삶을 살기로 한다. 잭은 지속적으로 에니스에게 둘이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에니스는 확고하게 일상을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에니스는 알마와 이혼하게 되고 그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잭이 찾아온다. 잭의 바람과 달리 에니스는 딸들과의 시간을 위해서 둘의 만남을 미루고 잭은 눈물을 흘리며 돌아온다. 이때부터 잭은 에니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가정에서 전과는 달리 예민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둘은 20년 동안이나 일상을 지키면서 일 년에 한두 번 산에서 만나는 관계를 지속한다. 그렇게까지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가 싶은데 잭과 에니스는 그렇다. 그리고 늘 에니스를 갈구하는 잭은 에니스가 일 때문에 8월이 아닌 11월에 만날 수 있다는 말에 화를 내며 그만 만나자고 하고 에니스는 그러자고 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이별을 하고 이번에는 에니스가 먼저 엽서를 보내지만 수취인 사망이라는 회신을 받는다.

 

소심한 에니스는 조심스레 잭의 집에 전화를 걸어서 그의 부인인 로린에게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로린은 잭이 타이어를 교체하다가 사고를 당해서 죽었다고 하지만 에니스는 잭이 동성애자로 몰려서 죽임을 당하는 상상을 한다. 에니스가 얼마나 두려움이 많은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장면 중 하나이다. 그리고 항상 덤덤해 보이던 로린은 잭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눈시울을 붉히는데 이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에니스는 잭의 바람대로 화장한 유골의 반을 브로크백에 뿌려주기 위해 그의 고향집을 찾는다. 그곳에서는 둘의 관계를 아는 듯한 아버지 때문에 약간 긴장이 되기도 하였는데 결국 유골은 가족의 무덤에 묻기로 한다. 그리고 잭의 엄마의 배려로 에니스는 잭의 방에 갔다가 둘이 브로크백 마운틴을 내려오기 전에 싸워서 피에 묻었던 셔츠를 발견한다. 잭의 셔츠 안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에니스의 셔츠가 끼워져 있었던 것이다.

 

에니스가 살고 있던 트레일러에 그의 딸인 알마 주니어가 찾아와서 결혼 소식을 알린다. 그녀는 아빠가 자신의 결혼식에 오길 바란다는 뜻을 전하고 에니스는 일이 약속되어 있지만 가기로 한다. 에니스는 딸이 떠난 후 딸이 놓고 간 스웨터를 옷장에 넣기 위해 문을 연다. 옷장 문에는 잭과 에니스의 셔츠가 있는데 이번에는 에니스의 셔츠 안에 잭의 셔츠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브로크백 마운틴 사진이 있는 엽서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에니스는 잭에게 맹세한다는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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