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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 지쳐있는 마음에 활력을 주는 영화

by qkekquf 2022. 4. 8.

고불고불한 산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혜원의 뒷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보는 내내 자연의 재료로 만든 음식들이 나온다. 복잡하거나 갈등이 있는 스토리는 배제하고 계절에 따른 혜원의 요리와 추억, 우정, 수줍은 사랑까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래서인지 혜원처럼 지쳐있고 어딘가 허기지고 불안한 마음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활력을 찾은 것 같았다.

 

리틀-포레스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자연스러움이었는데 다양한 종류의 음식과 혜원의 추억, 친구들과의 친밀함이 전혀 어긋남 없이 어우러졌다. 나의 삶과 노력이 계속해서 부족하다 느끼는 도시의 삶을 떠나 시골에 정착하고 싶다는 바람이 절로 생겼고 보는 내내 그나마 할 수 있을 것 같은 몇몇의 요리는 직접 해 먹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 따뜻한 음식과 친밀한 고향 친구들

서울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시골집에 온 혜원은 배가 고파서 마당에서 눈 속에 파묻혀있던 배추를 캐와서 배춧국을 끓여 밥을 먹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잠이 든다. 그리고 그다음 날 혜원은 수제비와 함께 본격적인 시골생활을 시작한다. 추울 때 영화를 봐서 그런지 빨간 국물에 수제비 반죽이랑 파만 보이는 그 비주얼이 왜 그리 맛나 보이던지 계속 생각이 났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혜원은 늘 인스턴트 음식에 허기졌고 배가 고파서 돌아왔다고 고향 친구 은숙에게 말한다. 은숙은 그들의 고향인 미성리를 한 번도 떠나본 적 없이 은행에서 일하고 있고 재하는 혜원과 마찬가지로 서울 생활을 하다가 시골에 와서 과수원 일을 하고 있다. 재하는 말은 안 하지만 혜원이 온 것을 누구보다 반가워하는 표정이 역력한데 혜원이 밤에 의지하도록 다섯 번째로 태어난 강아지 오구를 데려다준다.

 

혜원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랑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수능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서 갑자기 엄마가 집을 나가버렸다. 혜원이 어렵게 발견한 엄마가 남기고 간 편지에는 긴 변명들이 남겨져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혜원은 보란 듯이 열심히 살아봤지만 지친 몸과 마음으로 엄마 없는 시골집에 혼자 돌아왔다. 친구들과 재회한 후로 혜원의 요리는 좀 더 다양해지고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던 시루떡까지 먹고 싶다는 욕구를 넘어서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도전정신을 불러일으켰다.

 

은숙은 재하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재하는 혜원을 좋아한다는 것이 중간중간 과하지 않게 드러난다. 하지만 아직 혜원은 재하의 마음을 못 느끼는 것 같다. 혜원이 막걸리를 만드는 장면에서부터 음식과 함께한 엄마와의 추억도 함께 나온다. 오랜만에 모인 고향 친구들은 혜원이 만든 막걸리와 함께 겨울밤 술자리를 함께 한다. 혜원은 봄까지 좀 더 고향에 머무르기로 한다.

 

봄, 감자 싹이 나면 본격적인 봄의 시작

봄이 된 고향 풍경은 노란 개나리로 물들어 있다. 초록의 들판과 노란 개나리 사이 혜원의 자전거 탄 움직임은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진다. 혜원은 감자를 심으면서 고향살이의 봄을 시작한다. 혜원은 요리할 때마다 엄마가 떠오르는 것이 불편하지만 그녀는 계속 등장한다.

 

자꾸만 떠오르는 엄마를 뒤로 하고 봄 양배추로 아삭아삭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던 혜원은 엄마에게 편지를 받는다. 엄마의 편지에는 어린 시절 혜원이 늘 궁금해했던 감자 빵 만드는 법이 들어있었고 그녀는 가출한 엄마의 첫 편지가 레시피란 것에 어이없어한다.

 

여름, 여전히 함께 하는 엄마와의 추억

혜원은 여전히 고향집에 있고 어느새 오구와 함께 토마토도 많이 자라 있다. 엄마와의 추억은 음식뿐 아니라 혜원의 모든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있는 듯하다. 혜원은 사소한 다툼을 한 은숙과 크렘브륄레란 요리로 화해를 하는데 그것은 엄마의 화해 방식이었다.

 

토마토와 함께 엄마와의 여름날 추억을 떠올리며 혜원은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친구들과 여름날 밤에 계곡 옆에서 즐거운 술자리를 한 뒤 혜원은 임용고시에 합격한 남자 친구에게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서울을 떠나온 것이 아니라 고향에 돌아온 것이라고 말한다.

 

가을, 혜원의 결심

혜원의 서울에서의 답답한 모습과 회사를 버리고 온 재하와 탬버린 부장의 머리를 내리친 은숙의 이야기가 나온다.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된 은숙은 혜원의 지시에 따라 매운 고추를 잔뜩 볶아 떡볶이를 만드는데 재하까지 함께 한다. 그들은 너무 매워서 힘들어 보였지만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고추를 넣어 볶은 떡볶이를 만들어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밤에 태풍이 와서 고모의 벼가 쓰러지고 재하의 사과 과수원도 타격을 받는다. 혜원은 재하의 과수원에 들르고 재하는 태풍에도 유난히 빨갛고 멀쩡하게 살아남은 사과를 따서 혜원에게 건넨다. 혜원은 재하의 말을 곱씹으며 자신의 고민을 정면으로 맞서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엄마의 편지를 다시 읽어본다. 엄마의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은 혜원은 엄마에게 자신만의 감자 빵 만드는 법을 담아 답장을 쓴다.

 

돌아온 겨울과 봄, 그리고 혜원

맛있어진 곶감과 함께 깊어진 겨울에 혜원은 친구들에게 말도 없이 떠난다. 서운해하는 은숙과 달리 재하는 혜원이 진짜 돌아오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는 듯하다. 혜원의 지금 상태를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의 아주 심기에 비유한다.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혜원은 따뜻한 봄날 고향집에 돌아온다. 재하가 데려다준 오구와 반가운 재회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온 그녀는 조금 열려 있는 집의 문틈을 환하게 웃으며 다가간다. 아마도 엄마도 혜원처럼 아주 심기를 하러 돌아왔으려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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