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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 심오한 인연의 세계

by qkekquf 2022. 4. 4.

밝고 로맨틱할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생각보다 심오했다. 매력적인 남녀 주인공과 그에 걸맞은 예쁘고 꽉 찬 화면이 설레게 했지만 운명과 만남에 대한 철학이 깃들어 있어 머리가 좀 복잡해 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심오하고 다소 복잡한 설정 때문에 끝까지 지루한 순간없이 즐길 수 있었고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한번 더 보고 싶다.

너의-이름은-포스터
너의-이름은-포스터

아름답고 힘든 여정 속에서 마침내 이루어지는 인연

'너의 이름은'의 두 주인공은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운 배경 역할을 하는 시골 이토모리 마을에서 학교를 다니는 여고생 미츠하와 도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남학생 타키이다. 둘은 아침에 깼을 때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일을 겪는데 둘 다 며칠 동안 리얼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한다.

 

시골 마을의 무녀 가문인 미야미즈 가의 장녀인 미츠하는 가문의 풍습에 따라 공개적으로 신사 의식을 치러야 한다. 미츠하가 어릴 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외할머니와 갈등을 빚던 아버지는 집을 나가서 이장을 지내며 좁디좁은 시골 마을에서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아직 어리고 귀여운 동생 요츠하와는 달리 사춘기인 미츠하는 말 많은 시골 동네와 낡은 관습의 주인공 역할을 해야 하는 자신의 인생을 싫어한다. 다음 생에서는 도쿄의 잘생긴 남학생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미츠하는 진짜 도쿄의 낯선 방에 남학생의 모습으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미츠하가 타키라는 남자애가 된 것인데 꿈이 너무 리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평소에 동경하던 삶이라 나름대로 즐기기로 한다. 미츠하는 생전 처음 친구들과 카페에도 가서 꿈이라 생각하며 비싼 핫케잌 등을 마음껏 주문해서 먹는다. 또한 타키 대신 식당에서 알바까지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오데카라 선배의 치마에 무늬를 넣어 바느질을 해주면서 친하게 지내게 된다.

 

타키 역시 미츠하의 몸으로 지내면서 평소 답지 않게 수군대는 친구들을 향해 책상을 넘어뜨리는 과격함도 보여준다. 둘의 몸이 바뀌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되고 나서 그들은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금기사항을 만들기도 하고 각자의 휴대폰에 그날 일어난 일을 메모해두기로 한다.

 

한편 미츠하가 있는 이토모리 마을의 티브이에서는 계속 1200년을 주기로 태양을 도는 티아마트라는 이름의 혜성이 곧 다가올 것이라는 뉴스가 나온다. 어느 날 미츠하의 몸이 된 타키는 할머니, 동생과 함께 사당에 가게 되는데 그때 할머니로부터 잇는다는 뜻을 가진 무스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또한 신당에서 황혼의 시간을 경험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감탄하게 되는데 그때 너는 지금 꿈을 꾸고 있구나 하는 할머니의 말에 깬다.

 

원래의 몸으로 돌아간 타키는 미츠하가 약속한 오쿠데라 선배와의 데이트를 망치게 되고 메모에 있는 혜성에 대한 이야기를 묻기 위해 미츠하에게 전화하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둘은 그때부터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고 괜히 눈물이 나기도 한다. 여기서부터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심오하고 복잡한 세계로 들어간다.

 

미츠하의 세계는 3년 전 혜성이 이토모리 마을에 떨어지는 때이고 타키의 세계는 그로부터 3년 후이다. 둘의 몸이 바뀌지 않기 시작한 그날은 혜성이 이토모리 마을에 떨어져서 미츠하를 포함한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죽은 날이다. 타키는 미츠하를 그리워하며 그녀를 만나러 자신이 기억하는 동네를 그린 그림을 가지고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이토모리 출신의 라멘집 아저씨로부터 그 그림의 동네가 3년 전 혜성의 파편이 떨어져 재해가 발생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타키는 손목에 언젠가 장인에게 선물 받은 것이라고 기억하는 매듭 끈을 차고 있는데 그것을 계기로 잇는다는 뜻의 무스비 얘기를 떠올리고 할머니, 요츠하와 함께 갔던 사당에 간다. 그곳에서 미츠하의 절반이 담겨있다고 하는 구치카미자케(미츠하가 의식 때 씹다 뱉은 쌀로 오래 두면 술이 된다고 함)를 마시게 된다. 그다음 타키의 눈에 미츠하의 일생이 펼쳐지고 타키는 미츠하에게 혜성이 떨어지기 전에 도망치라고 외친다.

 

혜성의 낙하가 예정된 날 아침 타키는 미츠하의 몸이 되어 이토모리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작전을 세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츠하의 말을 믿지 않지만 텟시와 사야카는 대피 계획에 동참한다. 그러나 미츠하가 된 타키는 이장인 아버지를 설득하는 것에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황혼의 시간, 같은 장소 다른 시간에 있던 둘은 각자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면서 잠시 만나게 된다.

 

황혼의 시간에 잠시 만나는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손바닥에 각자의 이름을 써주기로 하지만 타키는 미츠하의 손바닥에 '좋아해'란 말을 쓰고 미츠하가 타키의 손바닥에 이름을 쓰려는 순간 만남의 시간은 끝나버린다. 그 후 둘은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둘 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뭔가 소중한 것을 떠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내내 휩싸여 살아간다.

 

타키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취업을 위한 면접을 보러 다닌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이지만 마음속에는 누군가를 무언가를 계속 찾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산다. 전광판 뉴스에서는 놀랍게도 이토모리 마을의 운명이 바뀌어 있었는데 그때 힘들게 복잡하고 심오한 스토리를 따라오던 마음이 좀 위안이 되었다.

 

바뀐 내용으로는 혜성이 마을에 떨어졌지만 그날 마을 전체에 대피 훈련이 있어서 엄청난 우연과 행운으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타키는 도쿄로 이사를 온 듯한 미츠하와 스치듯 몇 번 마주치게 된다. 마지막에 반대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둘은 눈이 마주치면서 서로가 찾던 누군가임을 깨닫고 서로에게 달려가 결국 만나게 된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마침 이 작품의 러닝타임만큼의 시간이 주어져서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끝이 날 때는 왠지 마음이 묵직해졌다. 결국은 해피엔딩인데도 중간에 나오는 시간, 인연에 대한 해석들이나 미츠하와 타키가 혜성의 충돌로부터 마을을 구하는 장면들이 몰입감 있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어딘지 슬프고 답답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미츠하와 타키, 텟시와 사야카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학교로 대피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하지만 어른들은 계속 무시한다. 또한 미츠하의 아버지인 이장의 방송에서는 사람들에게 침착하게 그 자리에서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때 어떤 사람들은 정말 기다리면 괜찮은 걸까 의문을 품기도 한다.

 

침착하게 기다리라는 대사가 나오는 그 장면에서는 세월호가 생각났고 혜성의 충돌이라는 모티브에서는 영화 돈룩업이 겹쳐서 생각났다. 그에 비하면 '너의 이름은'은 분명한 해피엔딩인데 슬프고 아린 느낌은 계속 남아 있다. 그리고 남녀의 몸이 바뀐다는 설정의 애니메이션으로 이렇게 까지 깊이 있는 사유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너의 이름은, Your Name., 君の名は。, 2016

감독 : 신카이 마코토
주연(목소리) : 카미키 류노스케(타키), 카미시라이시 모네(미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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