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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바이 더 씨 - 죄책감이 더해진 슬픔의 모습

by qkekquf 2022. 6. 14.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슬픔을 담담하지만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매개로 그와 관련된 인물들이 겪는 아픔과 그것을 애써 누르지만 여실히 느껴지는 그 슬프고 쓸쓸한 정서는 보는 내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그리고 불쑥불쑥 등장하는 기억들은 표현을 억누르는 주인공의 마음을 대신 보여주고 있다.

 

맨체스터-바이-더-씨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건조한 슬픔을 간직한 리 챈들러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평화로운 장면으로 시작된다. 바다에 유유히 떠있는 배에 리와 조, 그리고 어린 패트릭이 장난을 치는 장면이다. 그다음에는 도시에서 잡역부로 일하는 리의 모습이 나온다. 리는 네 채의 건물을 맡고 있는데 전등 갈기, 쓰레기 버리기, 눈 치우기, 막힌 변기 뚫기 등 하루 종일 별다른 말없이 일만 한다.

 

무뚝뚝한 리는 잡역부 일에만 충실하길 원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친절함을 원하고 때로는 이성적인 호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는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그러다가 일을 마치고 맥주를 마시다가 자신을 이유 없이 자꾸 쳐다봤다는 이유로 처음 본 사람들을 때리기도 한다.

 

초반부에는 겉으로 무뚝뚝해 보이는 리는 성실하면서도 뭔가 분노를 간직한 사람일 거란 추측을 하면서 영화를 감상하였다. 평소처럼 일을 하고 있던 리는 형의 일로 전화를 받고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향한다. 그리고 평소 앓고 있던 지병인 심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난 형의 아들인 패트릭을 만나게 된다.

 

고향에서 재회한 깊은 슬픔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형의 일을 계기로 고향에 방문하게 된 리의 기억으로 그의 심리를 대신한다. 그의 형인 조와 리, 그리고 패트릭이 배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기억과 리의 가족과의 기억이 그것이다. 리가 패트릭을 만나러 가는 길에도 그의 기억은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영화를 고요한 가운데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조가 리에게 패트릭의 후견인 역할을 맡겼다는 변호사의 말을 듣게 되는 영화의 전반부에 주인공의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의 비밀이 그의 기억으로 밝혀진다. 그다음부터는 너무 깊고 어두운 슬픔을 겪게 되면 사람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며 보게 되었다.

 

회복 불가능한 슬픔을 겪게 되면 그리고 그 슬픔에 죄책감까지 더해지면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살아가게 되고 리는 내내 그런 상태로 그려진다. 죄책감이 더해진 슬픔에는 눈물을 흘릴 감정도 안 남는 것처럼 보였다. 해결할 수 없기에 그냥 아프고 고통스러운 채로 꾹꾹 가슴에 눌러 담은 채 살게 되는 것 같다.

 

평화로운 풍경과 고통스러운 내면의 대조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 내용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주인공이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인데 그와 대조적으로 풍경은 너무나 평화롭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작은 바닷가 마을로 영화 내내 잔잔한 물결을 이루는 바다와 거리에 여유롭게 서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그리고 평화롭고 일상적인 마을의 모습이 배경이 되어서인지 주인공의 고통스러운 내면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옅어지지 않는 괴로움은 여전한데 자연은 물론 일상의 모든 일들은 원래대로 진행되는 상황이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수시로 되살아나는 기억들에서 죄책감과 후회로 가득 찬 그의 마음이 느껴졌고 공감이 갔다. 어떤 슬픔은 마음 깊은 곳에 넣어둔 채 살아갈 수밖에 없고 비록 환하게 웃지 못하더라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깊은 슬픔과 기억에 대한 영화

살면서 큰 슬픔을 겪은 적이 있다. 막상 생전 처음 느껴보는 슬픔을 겪어보니 모든 기억이 그 일이 있기 전과 후로 나뉘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그리고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슬픔에서 더욱 멀어지게 할 수 있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정말 큰 슬픔에는 후회와 죄책감이 따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슬픈 것은 맞지만 눈물을 마음껏 흘릴 수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나의 슬픔의 양상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공감이 갔다.

 

또한 고요하고 평화로운 배경과 주인공이 떠오를 때마다 들리는 클래식 음악이 마음속 괴로움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삼촌과 조카로 등장하는 리와 패트릭의 자연스럽고 절제된 연기도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2016
감독 : 케네스 로너건
주연 : 캐이시 애플렉(리 챈들러), 미셀 윌리엄스(랜디), 카일 챈들러(조 챈들러), 루카스 헤지스(패트릭 챈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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